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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말의 프랑스 작곡가들

 

◆포레

가브리엘 포레(Gabriel Faure, 1845~1924)는 1854년 교회 오르가니스트와 합창 지휘자를 위한 교육기관인 에꼴 니데르메이에 (Eole Nieder-meyer)에 입학하여 피아노, 평성가, 대위법, 르네상스 시대의 다성음악과 실제로 전조 되지는 않으면서도 상당히 먼 조를 암시하는 변화화음을 사용하는 베버의 화성 이론을 공부하였다. 이러한 창작기법의 배경이 그의 작곡 양식을 형성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쳤다. 1896년부터는 파리 음악원에서 교수를 하면서 라벨, 블랑제 (Nadia Boulanger) 등의 제자를 배출했고, 이들을 통하여 포레의 영향이 20세기의 많은 작곡가에게 확산하였다. 1905년에는 파리 음악원 원장으로 부임하였고, 1909년에는 프랑스 예수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922년에는 소르본대학에서 국가 공로자 표창받았다. 1910년부터 거의 청력을 잃었지만 1924년 별세할 때까지 왕성한 창작 활동하였다.
포레는 고전 성향의 프랑크와 인상파 음악의 드뷔시 사이를 이어주는 교량적 역할을 하면서 프랑스의 낭만파 음악을 이끈 대표적인 인물이다.
포레의 초기 작품들은 형식이 뚜렷하고 낭만적인 화성을 기본으로 하는 슈만, 멘델스존, 생상의 영향을 보인다. 그 후의 작품에는 리스트의 영향이 반영되어 있는가 하면, 1880년대 말에는 인상주의 미술과 상징주의 문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흔적도 있다. 1890년대의 작품에 와서는 화성이 대담하고 표현적으로 되며 말기 작품에는 대위법을 이용한 다성음악적 짜임새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포레의 음악은 세련되고 프랑스 음악의 귀족적 측면을 한층 더 구체화시킨 것이었지만, 작품 자체가 크게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작품을 통한 창작기법과 19세기말의 프랑스 음악의 발전에 기여한 그의 업적에 비하여 그의 작품은 상대적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지 않다. 프랑스 이외의 국가들에서는 과 약간의 실내악과 가곡들을 제외하면 그의 작품을 자주 연주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포레의 아름답고 섬세한 서정적 선율과 전통과 진보를 오가는 창작기법은 프랑스 음악의 우수성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 댕디

뱅상 댕디(Vincent d' Indy, 1851~1931)는 1872~90년 동안 프랑크에 게서 음악을 배우고 그의 창작 노선을 따랐다. 국립 음악협회 설립 당시부터 이 협회를 지지하였고 교육에도 관심이 높아서 파리 음악원에서 교육방법론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1894년에는 스콜라 칸토룸을 설립하였으며 그의 노력으로 1900년경에는 파리 음악원과 대등한 양질의 교육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이곳에서 그는 학생들에게 그레고리 성가와 팔레 스트리나 양식을 필수 과목으로 배우게 하였다. 댕디의 교육가적인 자질은 그의 명저 「작곡법 (Cours de composition musicale)」 (1903~33)에서 도 여실히 나타난다.
댕디는 특히 프랑스의 관현악 작품 발전에 공이 컸다. 프랑스 음악으로서는 매우 드물게 민요를 소재로 사용한 은 음악의 장르는 교향곡이지만, 피아노 독주 부분에 부수적이기는 하나 확실한 역할을 부여하고 있고 주제 변형을 이용하는 기법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프랑크의 영향을 반영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앗시리아의 여신 이스타르(Istar)에 대한 전설을 다룬 교향적 변주곡 는 모두 7개의 변주로 구성되어 있는데, 작품의 구성은 복잡한 전개에서 시작하여 동음의 단순한 주제 처리로 끝난다. 이러한 전개 방식은 주인공 이스타르가 연인을 구출하기 위하여 7개의 문을 통과한다는 전설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과 마찬가지로 프랑크의 순환기법이 나타나는 베를리오즈의 환상 교향곡> 이후 프랑스 교향곡을 대표하는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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