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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음악사

인상주의 음악

꿈짓 2023. 3. 10. 21:00

인상주의 음악

인상주의는 회화에서 유래한 용어이다. 초기 인상주의는 세잔느 (Cezanne)를 시작으로 마네 (Manet), 모네 (Monet), 드가 (Degas), 르누아르(Renoir), 피사로(Pissarro) 등에 의해서 절정을 이루었다. 이들 인상주의 회화의 특징은 선명한 윤곽이나 정확한 형식을 피하고 그 대신 빛이나 색채 효과를 그리고 유연성 있는 구도에 의존하는 것이다. 인상주의 미술에 비교되는 문학 분야는 보들레르(Baudelaire)를 선두로 시작한 상징주의 문학인데, 이것은 인상이나 감정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암시하거나 그 분위기를 불러일으키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상징주의 문학은 베를레느(Paul Verlaine)와 말라르메(Stephane Mallarme)에 의해서 확고한 기반을 다졌다.

인상주의 음악가

드뷔시

인상주의 음악을 정착시킨 인물은 클로드 드뷔시 (Achille-Claude
Debussy, 1862~1918)이다. 드뷔시는 1872년 파리 음악원에 입학하여 피아노를 공부하였고, 1880년에는 작곡 과정으로 다시 들어가 작곡가의 길을 결었다. 1884년에 칸타타 <돌아온 탕자(L' Enfant prodigue)>로 로마 대상(Prix de Rome)을 수상하는 등 작곡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이후 잠시 로마에서 유학을 했고, 1888년에는 바그너 음악에 심취하여 바이로이트에 가서 그의 음악을 직접 접했다.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는 림스키-코르사코프가 지휘하는 러시아의 관현악 음악과 무소르크스키의 오페라 <보리스 고두노프(Boris Godunov)>를, 그리고 자바 (Java)인들의 음악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여기에서 드뷔시는 러시아의 이국적인 관현악 기법에 매료되었고, 자바의 음악을 통해 5 음음계나 온음계진행 같은 비서양적이고 동양적인 음악 양식에 영향을 받았다. 또한 드뷔시는 스페인의 문화에도 관심을 갖고 <그라나다의 밤>, <이베리아(Iberia)>, 그리고 <가려진 세레나데> 등 스페인의 고 리듬을 사용한 음악을 작곡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이국적인 다양한 음악 경험과 프랑스 음악 고유의 귀족적 감각, 감수성, 그리고 드뷔시의 반낭만적 음악관은 드뷔시 음악의 창작 배경이 되었다.
1890년을 전후해서는 주로 가곡을 작곡하였다. 드뷔시의 가곡은 오늘날에도 애창되는데 서정적 선율과 회화적인 인상파적 색채가 특징이다.

라벨

후기 낭만파 프랑스 음악의 또 다른 대표자로 평가되는 모리스 라벨 (Maurice Ravel, 1875~1937)은 드뷔시보다 10여 년 늦게 태어났고 동시대에 활동하였지만 드뷔시보다 보수적이다. 라벨의 음악은 인상주의와 고전 양식들을 혼합한 형태로 인상주의의 감각적 분위기를 형식감 있게 처리하고 있다. 인상파 음악의 주제는 라벨에게 와서는 질서 정연한 논리적 체계에서 전개되어서 음악은 더욱 명료하다. 드뷔시의 다소 자유분방한 형식구조와 달리 라벨의 형식구조는 고전적이고 합리적이다. 그러나 음악어법상으로는 드뷔시와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복잡하지만 온음계적이고 기능적인 화성을 사용하면서도 7도와 9도 화음을 애용하고 병행화음, 해결되지 않은 불협화음, 오르가눔적인 병행 4도와 5도, 특정한 반주음형의 반복을 주로 사용한 화성어법은 드뷔시의 화성어법을 반영한다.
라벨 역시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자바와 러시아의 음악을 듣고 그 영향을 받았으며, 또한 바스크(Basque)인이었던 어머니의 이베리아 지역의 음악에도 관심을 보여 순수한 스페인 춤곡을 반영한 안달루시아 지방의 민속음악이나 플라밍고를 작곡하기도 하였다.


그 밖의 인상주의 작곡가들

루셀

댕디의 제자 알베르트 루셀(Albert Roussel, 1869~1937)은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은 프랑스의 중요한 작곡가이다. 루셀의 교향적 작품 <초혼 (Evocations)(1910~11)은 라벨의 작품처럼 형식이 분명하면서 여기에 이국적 노래를 도입하고 있다. 루셀의 이국적 소재는 인도 음악에서 얻고 있는데, <Evocations>뿐만 아니라 오페라 발레 <파드마바티 (Padmavati)>
(1914)에서도 힌두음계, 불규칙인 리듬, 오스티나토 기법 등 인도의 음악요소들을 사용하고 있다. 말기에는 드뷔시와 마찬가지로 신고전주의로 전환하여 <관현악 모음곡 F장조>(1926), <교향곡 제3번 g단조)(1930), 현악 합주곡 <신포니에타(Sinfonietta)>(1934) 등을 작곡하였다.

사티

에릭 사티(Erik Satie, 1866~1925)는 1900~25년 동안의 프랑스 음악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 그의 음악은 인상주의도 반인상주의도 아닌 독창적인 양식으로 시작해서, 말기에는 전위적 작곡 경향을 보이고 있다. 파리 음악원에서 작곡 공부를 한 후 작곡한 피아노 소품 <3개의 짐노페디(3 Gymnopedies)>(1888)에는 인상주의 음악에 주로 나타나는 해결되지 않은 9화음, 선법적 화성과 선율, 5 음음계들이 주를 이룬다. 1890년대에는 신비주의 종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어 신비주의 성향을 땐 작품들을 썼으며, 1891년에는 드뷔시를 만나 모노디 양식과 선법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1905~08년 동안에는 스콜라 칸토룸에서 대위법, 푸가, 관현악 법을 공부하였고, 이 무렵부터 초현실적이거나 익살스러운 풍자적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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