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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작곡가 5인조

 

1. 발라키레프

밀리 발라키레프(Mily Balakirev, 1837~1910)는 1860년대에 민요 수 집을 시작하여 이들 민요에 화성을 붙여서 2권의 모음집으로 출판하였다.
그의 작품목록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작품은 1882년에 출판된 교향시 <러시아(Russia)>이다. 또 다른 중요한 작품으로는 피아노를 위한 동양적 환상곡 <이슬람 사원(Islamey)>(1869)이 있다. 기교적으로 난이도가 매우 높은 이 작품은 코카서스와 아르메니아의 3개의 주제에 기초하여 작곡되었는데, 강렬한 리듬적인 역동성에서 리스트의 영향을 찾을 수 있다. 코 카서스 지방의 전설을 담은 교향시 <타마르(Tamar)>, <리어왕 (King Lear)>, 2권의 <러시아 민요집> 등의 작품들에서도 발라키레프의 국민주의 성향은 도처에서 나타난다. 국민주의 음악을 옹호했던 발라키레프는 그의 동료나 제자들에게 러시아 작곡가도 독일 작곡가들과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발라키레프는 전통적인 서유럽 음악을 완전히 거부하지는 않았고, 그의 음악에 서유럽 음악을 절충시켰다. 발라키레프의 후기 피아노곡들은 필드나 쇼팽의 작품처럼 낭만파의 서정성이 짙게 나타난다. 발라키레프는 글린카로부터 민속적 재료를 적절히 음악화하는 방법을 배워서 보로딘, 무소르크스키, 림스키-코르사 코프 등에게 전수했고 더 나아가 드뷔시와 라벨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2. 큐이

음악교육을 거의 받지 못한 세자르 큐이 (Cesar Cui, 1835~1918)는 발라키레프의 작곡가들 모임에서 크게 주목받지는 못하였다. 열렬한 국민주의 지지자였고 작품 수도 많지만 큐이의 모든 작품이 국민주의를 반 영하고 있지는 않다. 그의 작품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15개의 오페라 중 4개는 어린이를 위한 오페라이다. 그의 대부분의 오페라는 유럽의 전통 양식을 사용하고 있는데, 특히 프랑스의 마이어베어(Meyerbeer)와 오베르(Auber)의 영향이 많이 나타난다. 그 밖에도 칸타타나 합창곡들, 현악 4중주를 비롯한 실내악, 관현악곡, 피아노곡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소품들이 우수해서 살롱음악 작곡가로 더욱 알려졌다.

3. 보로딘

알렉산더 보로딘(Alexander Borodin, 1833~87)은 어린 시절부터 플루트, 첼로, 피아노 등의 악기를 배웠고, 1859년에는 유럽 등지에서 잠시 음악 공부를 하였지만 독일에 가서는 약학을 공부하였다.
귀국해서는 1864년부터 성 페테르부르크 의료원에서 교수생활을 하였다. 독일로 가기 전 알게 되었던 무소르크스키와 계속 친분을 맺으면서 발라키레프 모임의 일원이 되었다. 보로딘의 최초의 대작은 <교향곡 제1번 EP장조> (1862~67)이다. 이 곡은 전통적인 형식을 따르지만 스케르초와 트리오가 제2악장에, 느린 악장이 제3악장으로 배치되어 있다. 보로딘은 러시아의 민속선율을 그대로 인용하지 않았지만 글린카의 관현악법, 자신의 독창적 주제, 이례적인 조성과 선법적 화성으로 러시아의 민족적 취향을 반영하고 있다. 보로딘의 주요 작품으로는 교향곡을 포함한 관현악곡과 오페라를 들 수 있고, 그 밖의 개별 작품으로는 무소르크스키의 사망에 부쳐 작곡한 가곡 <For the Shores of the land)(1881)과 <현악 4중주 제2번 D장조)(1885)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4. 무소르그스키

발라키레프의 수제자였던 모데스트 무소르크스키 (Modest Musorgsky, 1839~81)는 원래 군인이었으나 발라키레프의 도움으로 작곡을 공부하였다. 1858년 정신 질환을 앓기 시작하였고 1865년에는 모친이 사망하였 다. 결국 무소르크스키는 알코올 중독과 간질이 겹쳐서 1881년에 세상을 떠났다. 갑자기 사망했기 때문에 그의 많은 작품들은 미완성으로 남겨졌고, 이들 중 상당수는 림스키-코르사코프를 비롯한 다른 작곡가들에 의 해서 완성되었다. 무소르크스키의 가곡들은 다양한 분위기를 묘사하는 러시아의 국민적 색채가 뛰어난 작품들로 19세기 최고의 성악곡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의 가곡들의 가사는 무소르크스키 자신이 직접 쓰거나 러시아 시인들, 또 는 괴테(Goethe), 하이네 (Heine), 뤽 케르트(Rickert)의 시를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다. 악절이 비대칭적이어서 길이는 불규칙하지만, 그의 선율 은 낭송적이고 대부분 선법에 기초하였으며, 러시아 언어의 억양에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다

5. 림스키-코르사코프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Nikolai Rimsky-Korsakov, 1844~ 1908)는 할머니의 영향으로 러시아 정교의 예배음악과 민요에 대해 애착을 갖고 있던 중에 보르트니안스키 (Bortniansky)의 종교음악을 듣고 더욱 음악의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작곡을 시작하기로 결심을 한 것은 글린카의 오페라 <황제에게 바친 목숨>을 접한 후였다. 림스키-코르사코프는 민속선율을 자주 사용하거나 민요를 편곡하고 출판하는 등 러시아의 국민적 어법을 여전히 사용하였지만 발라키레프 중심의 극단적 국민주의에서 탈피하여 폭넓고 절충적인 방향을 추구하였다. 1871년 성 페테르부르 음악원의 교수가 되면서 화성학과 대위법 형식에 대하여 체계적인 연구를 하게 되었고, 그 결과 고전주의의 전통 노선을 따른 교향곡, 현악 4중주, 현악 6 중주곡들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고전주의 성향의 작품 이외에도 환상, 민요, 역사를 그린 표제음악과 오페라들을 작곡하였다. 그의 오페라 15편 중 가장 중요한 두 작품은 <사드코(Sadko)>(1896)와 <황금 수평아리(The Golden Cockerel)>(1907)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