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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들
낭만시대의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들은 언제나 이탈리아 오페라의 전통적 요소를 작품의 기초로 삼고 있지만 이들도 유럽 사회에 만연된 새로운 낭만파 음악의 풍조를 거부할 수는 없었다. 낭만시대의 오페라에서는
대본의 선택에서도 큰 차이가 있었지만 가수의 선택에 있어서 변화가 있었는데, 로시니는 카스트라토(castrato)를 점차 콘트랄토(contralto)로 대체했고, 로시니 이후의 작곡가들은 콘트랄토를 테노르로 대체시켰다. 벨리니는 이탈리아 작곡가로는 처음으로 테노르를 오페라의 주역으로 배치하였고, 베르디는 바리톤을 그의 대부분의 작품에서 주역으로 배치하고 있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또 다른 변화로는 프랑스 그랜드 오페라에서 영 향을 받은 것으로 합창과 관현악의 중요성이 더해졌다. 합창은 출연회수가 증가되었을 뿐만 아니라 규모도 커졌고, 관현악에서는 목관과 호른의 역할이 커져서 음색이 더욱 화려해졌다. 후기 오페라로 갈수록 관현악의 효과적인 사용은 더욱 중요해졌다.
- 로시니
지오아키노 로시니 (Gioacchino Antonio Rossini, 1792~1868)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노래와 피아노를 배우면서 음악공부를 시 작하였다. 볼로냐의 소극장에서 가수로 잠시 있었고, 1807년에는 음악학 교에 입학해서 작곡과 첼로를 배웠다. 학교 교육에 만족하지 못한 로시니는 존경하던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작품을 가지고 독학을 하였다. 로시니는 학생 시절에 이미 1개의 미사, 몇 개의 종교음악, 기악곡, 1개의 칸타타를 작곡하였고, 이어서 오페라 작곡가로 두각을 나타내었다. 로시니는 18세기와 19세기를 이은 이탈리아 낭만주의 오페라 작곡가이다. 주로 이탈리아에서 오페라 세리아와 오페라 부파 작곡가로 활동했고, 파리에 가서는 당시 유행하던 그랜드 오페라를 작곡하였다.
- 도니제티
가에타노 도니제티(Gaetano Donizetti, 1797~1848)는 로시니를 계승 한 19세기 전반기의 대표적인 오페라 작곡가 중의 하나이다. 사업가인 부친은 도니제티가 법률가나 교사가 되기를 원하였으나, 음악가가 되기를 원하는 도니제티의 의욕을 꺾지 못했다. 도니제티는 여러 종류의 많은 작품을 남긴 작곡가로도 유명하지만, 오늘날에는 그의 오페라만이 자주 연주될 뿐이다. 그의 오페라는 서정적인 벨칸토 창법에 잘 어울려서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그가 남긴 오페라는 66개에 이르는데, 처음에는 이렇다 할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31번째 오페라인 〈안나 볼레나 (Anna Bolena), 1830)를 작곡하고서야 처음으로 인정을 받았다.
- 벨리니
빈센초 벨리니(Vincenzo Bellini, 1801~35)는 오르간 연주자인 아버 지로부터 음악교육을 받고 귀족의 후원을 얻어서 나폴리 음악학교에 다녔다. 학생시절부터 오페라를 작곡하기 시작해서 10여 편의 작품을 남겼으며, 그의 첫 성공작은 1827년에 작곡한 <해적 (II Pirata)>이다. 1829년에 작곡한 두 편의 오페라는 실패했으나 이듬해에 작곡한 <카플레티 가 문과 몬테키 가문(I Capuletti ed i Montecchi)>(1830)과 (몽유병의 여인 (La Sonnambula)>(1831), 그리고 〈노르마(Norma)>(1831)는 성공을 거두었다.
- 베르디
쥬세페 포르트니오 프란체스코 베르디(Giuseppe Fortunio Franceser Verdi, 1813~1901)는 여인숙을 경영하는 부친의 장남으로 넉넉하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났다. 순회하는 악사인 바가제트가 이 여인숙에 묶고 있을 때 베르디의 음악적 재질을 발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음악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7세 때에 고향의 미카엘 교회의 오르가니스트인 피에트로 바이스로키에게서 기초적인 음악 교육을 받게 되었고, 10세 때에 바이스 드로키가 사망하자 마을의 부호인 바레치의 후원으로 성 바르톨로메오 대성당의 오르가니스트인 프로베치 밑에서 조수로 일하면서 음악공부를 하게 되었다. 1832년, 바레치의 도움으로 밀라노 음악원에 응시했으나 나이가 많아 입학이 허락되지 않자 빈센초 라비나에게 개인적으로 레슨을 받았으며, 1836년에는 바레치의 딸과 결혼하여 밀라노에 정착하였다.
1839년에 최초의 오페라로 간주되는 (산 보니파치오의 백작 오베르토 (Oberto, Conte di San Bonifacio))를 시작으로 베르디는 26편의 다양한 오페라를 작곡하였다. 오페라 작곡가로 큰 명성을 얻은 베르디는 이탈리 아 정부의 권유로 1859년부터 1865년까지 국회의원으로 재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화려한 경력과는 달리 개인적인 삶은 불행했다. 첫 번 째 결혼해서 얻은 두 자녀가 어려서 세상을 떠났고 첫 번째 아내가 죽은 후 훗날 재혼한 아내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1893년에 마지막 작품인 <팔스타프(FalstafT))를 작곡할 무렵부터 베르디는 건강이 점차 나빠졌고, 1901년 1월 27일 밀라노의 한 호텔에서 운명하였다.
'오페라 이외의 작품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으니 베르디가 존경하던 시인 만초니(Alessandro Manzoni)의 죽음을 애도해서 지은 〈레퀴엠)과 가곡들을 자주 연주된다. 기악곡으로는 (현악 4중주 e단조), 신포니아, 행진곡과 피아노 작품들이 있고, 그 밖에도 종교음악으로 3개의 칸타타, 미사곡들과 다수의 합창곡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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